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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관점에서 본 탐정소설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 연구

1. 들어가며: 왜 탐정소설과 여성인가? 탐정소설은 현실에 기반한 범죄와 미스터리가 발생하고 이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 지극히 현실주의적일 수 밖에 없다. 범죄사건이 마법이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과학기술로 발생되어서는 현실 인간인 탐정이 이를 해결할 수 없고 그렇기에 상당 부분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밴 다인이 추리소설 작법 20원칙을 만들며 그 첫 번째 조항을 독자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 역시 현실의 독자가 예측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범행 배경이나 수법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최근 SF문학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미래사회나 미래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미스터리소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이 역시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탐정이 등장한다..

탄핵을 기다릴 때 읽어야 할 책, 루리의 <긴긴밤>

긴긴밤> 루리 글, 그림/ 문학동네/ 2021이른바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하도 유명해서 읽었다. 솔직히 그림책 별로 안 좋아한다. 이미지에서 감정과 의미를 읽는 거 잘 못한다. 아이들의 말랑한 감성, 이것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림책으로 분류하기에는 그렇게 그림이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첫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나에게 이름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아버지들이었다. 나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나의 아버지들은 모두 이름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아버지들, 작은 알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던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의 이야기이다. (p. 7)한때 허세 쩔어 살던 시절에 세익스피어를 읽고 이인화를 읽으며 ‘내가 누구인..

솔로 아닌 사람이 읽은 <에이징 솔로> 리뷰

김희경/ 동아시아(2023) 나는 솔로가 아니면서 왜 이 책을 읽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솔로'보다는 '에이징'이 궁금해서 그랬다. 점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이듦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그런데 궁금해도 물을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다들 가족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면서 나이듦에 대해 진지하고 깊게 고민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고민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고민할 틈이 없을 수도 있겠다. 내 나이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는 나이들고 자녀는 자라면서 부양문제, 학업문제, 관계문제, 그리고 이런 모든 문제의 환원점인 돈문제에 빠져 다른 고민을 할 틈이 없어 보였다. 물어볼 데 없는 질문을 안고 찾기 힘든 답을 찾느라 헤매다 를 읽었다. 최소한 '솔로들'은 자기자신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진지하게 그 답을 고민하고 ..

<2023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23)

올해도 어김없이 이상문학상이 발표되었다. 발표뉴스만 보고 동네서점에 몇 차례 헛걸음 후 예약 주문을 하고나서야 손에 넣었는데 벌써 초판 6쇄! 문학, 특히 한국소설이 인기가 없어졌다는 우려도 있지만 여전히 꾸준히 읽는 사람들도 있으니 아직은 너무 걱정말자 생각했다.이상문학상은 1977년부터 시행한 국내 대표 문학상인데 대형 출판사나 언론사가 작가들의 등용문이던 시대는 이제 많이 멀어졌지만 그래도 매년 연초 올해의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사보는 것이 나의 연간 루틴이다.올해의 대상은 최진영 작가의 「홈 스위트 홈」이다. 「홈 스위트 홈」_최진영 소설의 주인공은 말기암 환자인 여성이다. 몇 번의 재발 끝에 더 이상의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집을 갖기위해 낡은 폐가를 사서 원하는 대로 꾸며간..

1차원이 되고 싶어_박상영

박상영 지음/ 문학동네(2021) 초등학교 선생님에 자녀 둘과 남편을 가진 경상도가 고향인 40대 기혼여성인 내 친구에게 박상영의 을 권했다가 다소 원망을 들었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남에게 싫은 소리 아픈 소리를 잘 못하는 성격(이라고 본인이 말했으므로 나의 편견은 아니다)의 친구였으므로 조용한 원망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아마도 퀴어 문학인지 전혀 몰랐을 것이고, '요즘 핫한 젊은 작가' 정도의 정보만 내가 줬으니까. 박상영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어서 리얼리티가 너무나 살아있어서 충격이 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나로서는 박상영의 네번 째 작품인 는 내 초등교사 친구가 조금 더 접근하기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단 주요 캐릭터들이 중2부터 시작되어 얼마간은 10대..

트로피컬 나이트_조예은

_조예은/ 한겨레출판(2022) 로 한방에 나를 '조예은 월드'로 끌어들였던 조예은 작가의 2022년 소설집이다. 8편의 환상/미스터리 단편이 담겨있다. 작가 특유의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단단히 엮인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독특한 이야기 세계에서 또 잠시 정신을 잃었더랬다. 젊은 여성으로 보이는(사실 개인적인 정보는 잘 모른다. 작가도 내가 본인의 개인정보를 파기를 바라지는 않을테지) 작가의 머릿속에서 어쩜 이렇게 으스스하면서도 신비하면서도 공포스러우면서도 슬픈 이야기들이 빚어져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모두 여덟편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흥미롭고 신비하지만 짧은 이야기라서 짧게만 소개해보면, 핼러윈데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벤트에 억지로 맞춰지다 할로우맨처럼 옷만 남기고 사라진 유치원생 이야기 남편이 죽은 후 혼..

밤의 어둠 너머를 여행한다면_<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윤고은 지음 /민음사(2013) 내가 꾸는 꿈 중 가장 무서운 꿈은 이렇다. 해외여행을 갔는데 여권과 지갑을 잃어버린다. 휴대전화도 안 켜지거나 먹통이어서 누구에게도 연락을 못한다. 여기로 가보라 해서 어렵게 어렵게 찾아갔더니 다시 저기로 가보라고 하고, 말은 안 통하고 여기가 어딘지 점점 헷갈려진다. 지금 이 시간, 대낮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 막연함과 고립감에 몸이 떨리는 듯하다. 여행이라는 건, 특히 요즘 같으면 해외여행은, 낯선 곳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 흥분을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약간의 불안감을 갖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소한 출발하면서도 여권 챙겼나? 빠뜨린 건 없나? 혹시 아프면 어떡하지? 늦어서 비행기 놓치면 어떡하지? 하면서 즐거운 듯한 호들갑의 이면은 불안감이다..

품격 있게 살고 싶어 고양아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스포주의할 필요 없음, 결말 없음, PC없음)

장화신은 고양이의 영롱한 눈망울에 빠진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 동안 세상 온갖 귀여운 것들을 만나봤지만 장화신은 고양이의 눈망울에는 대적할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2023년 새해! 이것은 진정 극강의 귀욤 눈망울이다. 눈망울만 귀여웠으면 그에 취해 그냥 집에 돌아왔으면 될 테지만, 영화는 전체 관람가 영화에서는 드물게 묵직한 여운도 있다. "슝하고 날아서 꼭 찌른다." 이러니 이에 한 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가 없다. 은 슈렉의 조연 캐릭터에서 스핀오프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10년만에 나온 속편이다. 1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 했던가. 아니아니 여기 있다. 여전히 '장화신은 고양이'가 가져야 할 미덕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은데다 미덕이 더 늘었다. 미덕 하나, 스페인과 남미의 열정을 그대로! 남미..

80억 지구인에게는 80억 개의 이야기가...<피프티 피플> 정세랑

정세랑 지음/ 창비(2016) 50명이래서 뭐가 50명인가 했더니 진짜 50명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소설이었다! 플래너를 뒤적이다 오래전에 메모한 다음에 읽어볼 도서 리스트에 이 있었다. 보통 새로운 책을 읽을 때 간단한 리뷰만 읽는다. 리뷰마저 읽지 않으면 무슨 책인지조차 모르니 선택을 할 수가 없고, 너무 자세한 설명은 기대와 편견을 동시에 갖게 해서 최대한 멀리한다. 당시에 내가 왜 을 리스트에 올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함께 리스트에 있는 책들을 회사도서관에서 검색해봤더니 유일하게 이 책만 있어서 빌렸을 뿐이다. 그래서 피프티 피플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독특한 형식으로 쓰인 책인지도 모르고 읽고...... 놀랐다. 다 읽고 나서야 작가의 후기를 보니 애초에 ‘모두가 주인공이거..

이것은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마이크 브라운 지음/ 롤러코스터 이것은 용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오랜 기간 집중해 온 자신의 노력과 성과가 일순간에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성실한 지식인으로서의 의무와 진실을 추구하는 개인의 자존심을 걸고 모든 것을 뒤엎은 자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얼마 전 우연히 ‘알쓸인잡’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명왕성 퇴출에 관한 담소를 나누는 걸 봤다. 방탄 RM과 작가 김영하가 명왕성 퇴출을 말하며 속상하고 쓸쓸하다는 얘길 했다. 반면 천문학자 심채경은 다만 행성이라고 부르지 않는 게 왜 비극이냐는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명왕성이 퇴출된 지 벌써 16년이 흘렀다. 아직도 태양계 행성을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외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나 볼 수 있는데(이런 이들을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