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읽고 쓴다는 것은(책&영화 리뷰)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 나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사람

책날개 2025. 5. 27. 18:52

엘리자베스는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겨우 셀럽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50살이 되던 날, 중년 남성 프로듀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쇼에서 잘린다. 모든 불행이 나이 든 자신의 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혐오하던 엘리자베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통해 젊고 아름다운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당연히도 영화의 결말은 파국이다. 둘은 대립하고 서로를 제거하려고 하지만 상대는 또 다른 나이기에 완전히 죽여버릴 수가 없다. 아이러니 중에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문제는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젊은 나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엘리자베스는 그 기회를 스스로 버린다. 왜 그랬을까? 결국 내가 위험할 수 있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젊은 나를 제거할 수 있는 순간에 엘리자베스는 망설인다. 아마도 자신은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신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미지 출처: CGV

영화는 이른바 '바디호러' 장르라고, 여성의 신체를 갖가지 엽기적 묘사와 불편한 설정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난 이런 표현과 설정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사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몸에 칼을 대고, 보이는 것이 한 인간의 삶의  현실이 더 무섭지 않은가?

우리는 사람들이 사랑받을만한 인간일 때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사람들은 사랑받을만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나뉘고 나이가 많거나 장애인이나 소수자, 특정 외국인 등은 시각적으로도 보기 불편하고 별다른 능력도 힘도 없어서 특별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을 차별하고 혐오해도 된다고 믿게 되는 것 같다. 불행히도 이런 기준은 결국 자신에게도 적용돼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한 분투가 시작된다. 나이가 들고, 어딘가 아프고 불편하고 권력이나 영향력이 없는, 힘없고 무가치한 나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만 한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하고 있다. 내가 원래 좋아했던, 내가 되고 싶었던 내 모습보다 남들의 눈에 가치 있다고 비치는, 그래서 사랑받을 자격을 갖게 된 나를 더 원한다. 누군가 원래의 나보다 나아 보이는 를 제시하면서 바꿀래? 하고 물으면 조금 망설이다가 선택해버릴지도 모른다. 진짜 나보다 더 잘나고 똑똑하고 예쁘고 부자인 나를. 결국 영화 속 엘리자베스와 나와 다를 게 없다. 처음에는 젊은 나를 제거하지 못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선택을 답답해했는데, 나에게 그런 기회와 선택이 주어진다면 나 역시 같은 행동을 할지도 모르겠다 싶다. 거리를 두고 비판하던 것과 달리 그런 극단적 상황에 나를 놓고 보니 결국 영화 속 인물과 같은 선택을 할 것만 같았다. ? 정말 그러지 않고 싶은데, 잘못된 판단이라는 걸 알지만, ? 왜 다른 선택을 하는 걸 주저하게 될까? 결국 나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은 거다. 아직은 영화 속 엘리자베스처럼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어딘가에서 배제된 적이 없고, 지금은 그럭저럭 남들에게 멸시받지 않을 정도의 무언가를 가졌기에 그냥 이 정도 적당히 내가 나를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남은 나 자신을 내가 사랑하고 있느냐 하면, 나는 당연하다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내 사랑을 원하고 내 사랑이 힘을 갖겠는가. 내 사랑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시를 잘 알지 못하고 즐기는 법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야 하나의 시는 이해가 된다. 기형도 시인이 <질투는 나의 힘>에서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라고 노래했던 이유를 말이다. 생의 마지막에 내가 개처럼 쏘다니며찾아 헤맸으나 가진 것이 탄식밖에 없다고 후회하기 전에 나를 끌어갈 힘을 자신을 사랑하는 힘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의 말미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엘리자베스를 생각한다. 그 엄청난 힘을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노력에 조금만 더 썼더라면 결말은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 내가 영화와 시인을 생각하는 것은 나의 결말은 지금부터 조금 달라질 수 있다는 아주 희미한 희망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