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문학동네/ 2016
도서관 검색대에서 다른 사람의 검색기록에 있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우리가 보통 책을 검색한 후 찾아 읽는다는 것은 이미 어떤 책을 읽을지 마음을 정하고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읽고 싶은 욕구도 충분히 있다. 그런데 누군가 남긴 검색의 흔적을 보고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 나도 읽어볼까 하고 읽는 건 탐구정신 혹은 도전정신, 열린 마음 그리고 약간의 행운이 필요하다. 처음 보는 책인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찾아 읽을만한 ‘흥미로운 책’에 대한 탐구정신, 읽을 계획이 없는 혹은 사전 정보가 없는 책이라 실패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럼에도’에 대한 도전정신, 아직 검색창에 남아 있다면 찾아본 그 사람이 조금 전 꺼내 갔을 가능성이 큰데 이 책이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어야 만날 수 있으니 행운도 필요한 것이다.
도서관 검색대에 섰는데 옆 검색대에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고 검색이 되어 있다. 이건 뭐 소리 없는 아우성보다 더한 역설이다. 좋아, 랜덤박스를 열어보는 심정으로 가자.
그리고, 랜덤박스에 안에는 보물이 들어있었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에서 주인공 한탸는 폐지로 버려진 책들과 사랑에 빠진 인물이다. 한 달에 2톤의 책을 압축하는 일을 35년째 하면서 그는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다.
그런데 밀려드는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책의 등짝이 빛을 뿜어낼 때도 있다. 공장 지대를 흐르는 혼탁한 강물 속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물고기 같달까. 나는 부신 눈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그 책을 건져 앞치마로 닦는다. 그런 다음 책을 펼쳐 글의 향기를 들이마신 뒤 첫 문장에 시선을 박고 호메로스풍의 예언을 읽듯 문장을 읽는다. 그러고 나서야 그 책을 상자 안의 내 값진 발견물들 사이에 넣어둔다. (p. 14)
이것이 그의 일상이다. 폐지로 쏟아지는 책 가운데 귀중한 책을 꺼내 읽고 자신만의 꾸러미를 만들어 보관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은퇴계획을 세운다.
삼십오 년째 압축기로 폐지를 압축해왔지만 오 년 후면 나도 내 기계와 함께 은퇴한다. 하지만 이 기계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려고 나는 저금을 하고 있고, 저금통장까지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함께 은퇴할 것이다...... 회사로부터 이 압축기를 사들여 집으로 가져와, 외삼촌의 집 정원 한구석 나무 밑 어딘가에 놓아두고 거기서 하루에 한 꾸러미씩만 꾸릴 것이다. 정말 근사한 꾸러미가 되겠지! 열 꾸러미만큼의 힘을 지난 하나의 조각상, 한 점의 예술작품이 될 것이다.(p. 17)
한 번도 진짜로 버림받아본 기억이 없는지라 그렇게 나 자신을 방기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p. 18~19)
비록 남루한 옷을 입고 쥐들과 싸워가며 지하 폐지 구덩이에서 살다시피 하지만 그는 책을 읽는다. 독서가 그를 소외된 노동으로부터 구해주고 책 속의 작가나 철학자가 그의 친구가 된다. 매일 엄청난 양의 폐지를 압축하면서 그 속에서 엄청나게 훌륭한 책을 찾아 엄청나게 읽고 있는 그의 지식과 교양 수준은 이미 철학자이고 시인이다.
엄마가 죽었을 때 내 안의 모든 것이 울었지만 막상 내게는 흘릴 눈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화장터를 나서자 한줄기 가느다란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가 어여쁜 모습으로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p. 24)
그 순간 머릿속에는 칼 샌드버그의 시구만 맴돌았다. 사람에게서 남은 건 성냥 한 갑을 만들 만큼의 인(燐)과, 사형수 한 명을 목달 못 정도 되는 철이 전부라는.(p. 25)
한탸가 폐지 압축하는 일은 한 35년 동안 세상은 갖은 야만을 겪는다. 2차대전 동안에는 프로이센 왕실 도서관의 근사한 장서가 폐기되어 지하실에 도착하고 나치문학이나 반사회주의 문학도 파괴된다. 그는 조용히 폐지를 압축하는 일만 하며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전쟁과 폭력이 지속되는 세상에서 탄압받거나 추앙받는 책과 인생을 함께한다. 그리고 어느날 현대적 시설을 갖춘 폐지 처리장을 보게 되고, 이 보잘것없는 일도 결국 기계에게 뺏기게 될 것을 알게 된다.
성니콜라우스 성당의 거대한 제대처럼 천창의 창유리 높이까지 우뚝 솟은 기계를 마침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쳐다보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압축기였다. 홀레쇼비체 발전소 화상에 느릿느릿 석탄을 쏟아놓는 컨베이어처럼 폭이 넓고 기다란 벨트가 흰 종이와 책들을 천천히 실어날랐다. (중략) 무엇보다 그들이 낀 장갑에 나는 모욕을 느꼈다. 종이의 감촉을 더 잘 느끼고 두 손 가득 음미하기 위해 나는 절대로 장갑을 끼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기쁨에, 폐지가 지닌 비길 데 없이 감각적인 매력에 아무도 마음을 두는 것 같지 않았다.(p.89)
사르트르 양만과 카뮈 양반이, 특히 후자가 멋들어지게 글로 옮겨놓은 시시포스 콤플렉스는 지난 삼십오 년 동안 내 일상의 몫이었다. 그러나 부브니의 사회주의 노동당원들은 불안에 곤두선 책장들을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며 그 안에 숨겨진 가치 따위는 전혀 아랑곳없이 냉정하게 작업을 이어갔다. 누군가가 쓴 책들이었다. 누군가가 교정을 보고 읽고, 삽화를 넣고, 잇달아 인쇄에 들어가 제본되어 나온 책들일 것이다. (p. 93~94)
공장식 폐지 처리장에서는 아무도 책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책으로써 읽힐리는 더 만무하다. 책의 종이의 감촉을 느끼기 위해 책에 온갖 오물이 묻어있어도 장갑을 끼지 않았던 한탸는 모욕을 느낀다. 압축기와 함께 은퇴하겠다는 꿈은 이미 소멸했다. 한탸는 압축기와 함께할 마지막을 계획한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책을 좋아하고 책과 평생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애독가들에게는 한편의 비가(悲歌)다. 나는 한탸가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생을 마감하길 빌었지만 이 같은 마지막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장 사랑하고 애정하는 것들과 함께 산화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어떤 삶보다 행복할 것 같다. 다만 그가 떠난 후에는 폐지 작업장은 책은 다시는 책으로 호명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비극일 수 밖에 없겠지만.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내 생에 첫 체코문학이다. 나에게 체코는 인간기관차 에밀 자토펙과 원자력발전소 수출 대상국가 정도가 유일한 구체성이었다. 작가 보후밀 흐라발은 대학시절 체코가 독일군에게 점령당하자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을 전전한다. 뒤늦게 소설가가 된 후 자신의 작품들이 1989년 프라하의 봄까지 이십여 년간 출판금지가 되었어도 조국 체코를 떠나지 않았고 마침내 국민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노년에 입원한 병원에서 창가의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려다 추락해 사망했다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순간이 극적이라고밖에는 표현이 안 되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그의 모든 소설이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나로서는 읽어야 할 목록이 다채롭고 두터워지는 선물을 받았다. 이러니 도서관 검색대에서 옆 사람이 검색하는 책을 기웃거릴 수 밖에 없다. 노력 없이 얻어걸릴 보물을 기대하며 말이다.
'매일 읽고 쓴다는 것은(책&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SF 앤솔러지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 (0) | 2025.04.29 |
---|---|
기억을 팔아서 원하는 것을 사세요 <국경시장> (1) | 2025.04.22 |
밀실의 진화, <방주> (0) | 2025.03.31 |
젠더관점에서 본 탐정소설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 연구 (1) | 2025.03.20 |
탄핵을 기다릴 때 읽어야 할 책, 루리의 <긴긴밤> (0) | 2025.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