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사 1, 2> 장강명/ 은행나무
장강명 작가의 장편 소설이 오랜만에 나왔다. 그것도 두 권짜리 수사(搜査)물이다. 한동안 단편이나 에세이, 독서나 글쓰기 가이드라인 같은 책들만 나오고 있었고 티비출연이나 강연도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솔직히 살짝 초심을 잃었나?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런 대작을 쓰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인가 하는 용서와 미안함이 뒤섞인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하드보일드 형사 소설인데 아, 이건 너무나 내 스타일이다.

소설은 자신이 살인범임을 밝히고 살인경위를 설명하며 시작하는 범인의 자기고백적 챕터와 20년 전 사건을 재수사하는 형사들의 수사과정을 그린 챕터가 번갈아 진행된다. 이는 이 소설의 플롯 구조에서 가장 특별한 점이다. 특히 범인의 챕터에서 살인의 전후 상황과 살인 후 완성해가는 사상철학적 논리,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차용하는 소설가와 살인범과 그를 둘러싼 형사사법제도에 관한 논리 등은 그 챕터만 분리해서 하나의 사상서를 만든다 해도 완결성이 있을 정도로 꽤 체계적이다. 물론 그 논리와 사상에 동의하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더라도.
나는 심신미약을 주장하고 싶지 않다. 칼을 집어 들었을 때에도, 처음 그 칼을 상대의 가슴에 찌를 때에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심장을 노렸다. 상대를 죽이고 싶었고, 죽여야겠다, 아니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칼을 꽂을 때에는 그것이 상대의 숨을 끊을 결정타임을 알고 있었다. 아마 더 현명한 해결책은 분명히 있었을 거다. 그러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과 칼을 집어 드는 것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하겠다. 전과 없는 사람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사건에서 이해가 갈 만한 범행 동기 같은 감경(輕) 요소가 없을 때의 일반적인 형량: 10~16년.
내가 반성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형량은 높아진다. 무기징역을 받을 수도 있다. 그것은 부당하고, 그런 심판에 맞서야 한다고 나는 느낀다. 나는 살인을 저질렀다고 인정한다. 상대를 죽이겠다는 명백한 의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심신미약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벌로 1~2년형을 받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형사사 법시스템은 이런 견해를 인정하지 않을 텐데, 나는 그 시스템에 큰 오류 가 있다고 느낀다.
<재수사 1> p. 21
두 권의 책을 숨 쉴틈도 없이 몰아치듯 읽고 나니 세 개의 장면이 남는다. 먼저 연지혜라는 캐릭터의 발견이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1계 강력1팀 1반 소속 경사. 그는 중학교 때 자신이 미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고 몸 바쳐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좋은 일과 옳은 일 중에서 옳은 일을 해야 몸 바쳐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형사가 되었다.
"제복을 입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말인가요?" 구현승이 고개를 갸웃 했다.
"제가 하는 일이 몸 바칠 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헌신할 수 있는 일. 제가 다니던 부품 회사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자주 했어요 그 회사는 현대모비스에 제품을 납품했는데, 현대모비스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이고 그 그룹의 지주회사이기도 해요. 현대차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은 현대모비스에서 공급하는 거죠. 그러니 우리 회사도 현대차가 망하지 않는 한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내가 이 회사를 다닐 이유가 되는 건가, 회의가 들었어요. 물론 차 량용 안테나를 만드는 일에도 의미는 있겠지만, 그게 제 의미라는 생각은 안들었어요."
"경찰 업무는 의미 있는 거예요?"
"글쎄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일과 고통을 없애는 일은 분명히 다른거 같아요. 앞의 것은 좋은 일이고, 뒤의 것은 옳은 일이에요. 저는 옳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제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몸 과 마음을 바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그러지 않으면 시간을 허비하면서 인생을 보낼 거 같았고요. 의사나 간호사가 될 수도 있었겠고, 소방관도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그런데 경찰에 좀 더 끌렸어요. 경찰에서도 홍보나 인사 같은 업무가 아니라 수사를 하고 싶었고요."
본성을 감추기 위해 욕을 하고 싶을 때는 ‘아이고’라는 감탄사로 대신하고, 일부러 말도 느리게 하고, 친구들이 ‘연지혜표 미소’라고 부르는 부드럽고 겸손한 듯한 표정을 의도적으로 짓는 여자다. 매일 팔굽혀펴기와 스쿼트 100번과 플랭크 3세트를 하고 블루스 음악을 듣는다. 남자 선배들과 늘 일정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선배 형사들이 '담배 한 대 피러 가자'며 어깨를 툭 치는 관계를 유지한다. 형사로서의 최대 재능이 '대화'다. 범인이든 목격자나 피해자 주변인이든 행동의 맥락과 심리를 이해하려하고, 사건 현장에서 몸을 쓰는 일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걸 잘 알기에 신체능력을 자만하지 않고 최대한 효율적인 방식의 물리력을 계산하는 모습은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의 여탐정 아키라를 놀랍도록 닮았다(정작 장강명 작가는 와카타케 나나미의 소설을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뭐랄까, 하무라 아키라 탐정의 프리퀄 같은 느낌이었는데 불행히도 <재수사>에서 사건 시점과 재수사 시점이 2000년과 2022년으로 명확히 명시되어 있어 프리퀄로 이어붙이기는 좀 힘들겠다. 어쨌든 이렇게 매력적인(절대로 외모적인 측면이 아닌) 여성 형사/탐정 캐릭터를 워낙 찾아보기 힘든 장르이기에 <재수사>에서 발견한 연지혜가 너무나 소중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장면은 충격이라고 고백하지않을 수가 없는데 1권까지는 내가 범인의 철학사상에 거의 넘어갔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대로 책의 홀수 챕터는 범인의 자기고백이자 변명인데 그 사상의 범주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저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답을 척척 내놓기도 하고, 포스트 자본주의를 신계몽주의나 현실-상상의 공동체라는 이론을 창시해 설명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혼란과 불안이 가득한 21세기 한국의 현실세계에 대해서는, 듣고 있자면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설명을 하기도 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는 자본주의적 삶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회의와 명쾌하게 들어맞는 범인의 사상을 외면할 수가 없다.
앞에 놓인 선로에 다섯 사람이 묶여 있으며, 옆에 있는 뚱뚱한 남자를 밀어서 트롤리를 멈춰 세울 수 있을 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뚱뚱한 남자가 내 옆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롤리-선로-묶인 사람들'이라는 시스템은 내게 멀리 떨어져 있어서다. 나는 도덕적 책임에 원근법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므로 타인에 대한 개인의 도덕적 책임도 거리의 영향을 받는다.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 내 옆에 있는 뚱뚱한 남자의 생명과, 멀리 선로 에 묶인 인부 한 사람의 생명은 같다. 하지만 지상에서, 한 사람의 육신과 정신에서 트롤리 딜레마는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내 옆에 있는 남자의 생명에 대한 책임은 멀리 있는 사람들의 생명보다 내게 더 크게 지워진다. 개인은 가까이 있는 사람의 고통에 더 큰 도덕적 책임을 진다. 멀리 떨어진 별의 중력도 사라지지 않고 지구에 영향을 미치듯, 멀리 떨어진 사람의 고통에도 우리는 도덕적 책임을 진다. 하지만 그 거리가 멀면 멀수록 책임의 크기는 작아진다.그 감소 비율을 다양한 층위에서 여러 방식으로 측정해야 한다. 그것 이 새로운 도덕규범의 한 기초가 될 것이다.
-<재수사 1> p.377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기쁨과 감동을 모두 희생하는 나날을 과연 ‘삶’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산다는 것은 곧 삶에 맞선다는 것이며,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마지막 몇 방울을 어디까지 마시고 어디서부터 포기할 것인지 내가 정한다는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범인의 사상철학은 궤변으로 폭주하게 되는데 그래서 내가 그를 사상가로 간주하지 않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해야 할까?
세 번째 인상적인 장면은 1990년대 말에 20대 초반이었거나 대학생이었던 나와 같은 세대에게 ‘세대정신’을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20대에 IMF를 겪은 세대, 학부제라는 터무니없는 대학 제도를 겪은 세대, 21세기에 사회로 나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시대에 어른이 되어버린 세대라고 해야할까? 나는 내가 왜 선배들과 생각의 공통분모가 적고 후배세대들과는 이야기가 단절되는지 잘 몰랐다. 나만, 내 또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공통되게 느끼는 이질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밀레니엄과 IMF를 온몸으로 겪은 세대, 대학신입생과 선배 사이에 메울수 없는 간극을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 세대 고유의 문제였다. 그런 문제를 겪으며 우리는 우리만의 어떤 정서를 갖게 되었는데 나를 비롯한 대개는 그런 우리만의 것이 있는지조차도 몰랐으며 조금 특별한 것을 깨달았을지라도 뭐라 설명할 수는 없었던 것같다. 그런 걸 저명한 사회비평가나 이론서를 통해 깨닫는 것이 아니라 소설, 그것도 범죄소설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이것은 나의 지식과 정보의 부족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세대정신 시대감성은 딱히 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없어서 큰일인 것도 아니기에, 이건 그저 우리들끼리 좀 이상하다 내지는 왜 이렇게 공허하지? 하는 의문문으로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나는 이래서 내가 공허했구나, 그래서 내가 불안하구나를 조금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재수사>는 재미있는 범죄수사 소설이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됐다. 개인적으로는 해리 홀레나 하무라 아키라처럼 연지혜 시리즈가 계속되기를 소원하지만 작가는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얼마전 동네 도서관에서 장강명 작가의 강연이 있어서 무려 ‘직접’ 물어봤던 것이다. 대신 경감으로 승진한 연지혜가 등장하는 단편은 하나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작가의 마음이 바뀌기를 기대하며 2022년 최고의 소설 목록에 <재수사>를 올린다.


'매일 읽고 쓴다는 것은(책&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것은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1) | 2023.01.03 |
---|---|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냐면...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0) | 2022.11.08 |
100%가 아닌 0%를 위한 삶 (0) | 2022.02.20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1) | 2022.02.17 |
<2022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0) | 2022.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