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낸 순간

출산과 육아는 진정 나를 발견해가는 과정일까

책날개 2022. 6. 2. 14:08

엄마는 ‘나’와 ‘아이’ 사이에 놓인 수많은 선택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존재다. 송채경화(출처: 한겨레21 제1096호 <모성애 탐구생활>

 어제 출산한지 채 1년이 안된 친구가 요실금때문에 병원에 간다는 얘길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출산 후유증 요실금이 생각났다. 동시에 출산 직후, 명징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내 상태를 표현하자면 공포와 짜증이라 할 수 있는 그때가 생각났다. 공포는 아마도 사회적으로 나는 이제 도태되었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것이었고, 짜증은 삼십평생 겪어보지 못한 낯선 질병으로 시달리는 내 몸 같지 않은 내 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생각만으로도 심히 불쾌한 요실금이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갖게 된 것만으로도 아기천사가 찾아왔다는 둥, 곁에 와준 것 만으로도 감사하고 축복이라든 둥 얘기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낳게 됨으로써 자기자신을 부정하고 결국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성격이 바뀐다고도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출산 자체로 모성에게는 크나큰 압박과 폭력이고 이런 불안감을 아이에게 표현하는 극단적으로 예민한 부모가 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 엄마의 잘못이 아니고 출산의 고통과 책임을 모성에게 전가하는 나쁜 사회때문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뭐랄까, 나는 어느 쪽 의견도 동의하기 힘들었다. 

 아이는 귀여웠다. 그렇지만 축복이라고 할정도는 아니었다. 힘든 것으로 치자면 24시간 중노동이니 어떤 일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어떤 자발성이 깃들어 있었고 사실 대부분은 힘들다는 인식조차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어쨌든 유약한 내 몸뚱아리는 이런 상황을 거뜬히 견뎌내고 있지는 못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손목이 아파 한의원에 갔고 태어나 처음으로 치과에도 갔다. 그나마 이 마저도 유모차에 눕혀놓은 아이가 울어재껴 진료를 중단하고 나오기를 몇번씩 해가며 다녔다. 그리고 심지어 요실금이라니! 임신으로 얻은 체중을 줄여보겠다고 줄넘기를 했다가, 아! 이제 나는 평생 줄넘기는 못하는구나 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우울했는지 모른다. 물론 그때는 이것도 일시적인 증세일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그냥 망가진 내 몸에 대한 좌절뿐이었다.

 경력은 끊길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같으면 정말 바보같은 생각이었지만!) 하지만 감정의 추락은 의지의 추락을 낳고 의지가 떨어지니 나를 존중할 수가 없어졌다. 결국 이렇게 한 없이 작고 초라한, 무의미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면서도, 정말 하루 종일 그 일을 해내면서도 나에 대한 효능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남편은 일을 하고 성과를 내고 상을 받았다. 회식도 하고 동호회도 하고 친목도 다졌다. 나보고 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었다. 애는 내가 볼테니 바람쐬고 오라고 하면 좋으면서 싫었다. 좋은 건 잠깐 그 다음은 어차피 죄책감 같은 자기비난적 감정으로 되먹임됐다.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원래 긍정적이고 씩씩하며 미래지향적인 사람인데, 쉽게 좌절하지 않고 고난은 극복하는 것이며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라고 믿었던 사람이었는데 왜 지금의 나는 내가 알던 내가 아닐까? 수도 없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몇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자랐고 나는 복직도 하고 이직도 하며 다시 사회인으로써의 역할을 찾아갔다. 그때의 혼란은 그저 산후우울증 같은 거라고 넘겼다. 대부분은 원래의 생활을 회복하고 어떤 것은 여전히 전쟁이고 어떤 것은 전보다 나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뭐랄까, 뭔가가 방향을 틀었고 나는 예전의 나는 아니었다. 나빠졌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예전의 나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00이 아니라 김00' 같은 느낌이랄까.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아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나는 다르고, 아이가 좋은 것과 아이가 항상 기쁨은 아니라는 것은 공존한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당시 복잡하고 헝크러졌던 내 마음과 어딘가 변한 듯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글을 읽게 되었다. 

<한겨레21> 2016년 1월에 게재된 송채경화 기자의 <모성애 탐구생활 '공연하는 남편에게 질투가 났다'>칼럼이다. 저자의 큰 물음은 이거다. '출산 뒤 발견한 '나'와 쪼그라드는 예전의 '나', 행복하고도 우울한 '분열의 상태'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원문 바로보기)

 

책 <빨래하는 페미니즘>을 보면 소설가 레이철 커스크의 글을 인용한 부분이 나온다. 레이철은 회고록 <생명의 작업>에서 “어머니가 된 후 아이들과 함께하는 ‘나’는 결코 진정한 나 자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하지 않는 ‘나’ 또한 진정한 나 자신이 아니었다”고 썼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저자 스테퍼니 스탈은 이 글을 인용하면서 “어머니로서 우리는 이렇듯 분열된 상태로 사는 법을 배운다”고 했다. 분열된 상태,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낳은 뒤 오는 정체성의 혼란은 사춘기에 겪는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 한겨레21 제1096호 <모성애 탐구생활> 중-

 

 그래 그거다. 나는 상당히 분열된 상태였다.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고 나는 희미하게 느낄뿐 정의할 줄을 몰랐던 나의 상태는 분열이었다. 원래부터 있었던 나와 새로이 발현된 나 사이에는 괴리와 분열이 있었는데 그것을 알기도 인정하기도 힘들었던 거다. 대신에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보다 깔끔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하지만 감정적으로 기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사람을 만나고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것을 잘하고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로 자기안에 침잠할 때 즐거움이 크다는 것도. 그 밖에 정말 많은 것들을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됐다. 이전까지의 나와 이후의 나는 괴리가 아니라 분열을 과정을 통해 재인식하는 과정이었다. 신기하게도!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행복하다가도 지친 하루를 보낸 뒤 어두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우울해졌다. 가끔은 이런 내가 정상의 상태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었다. ‘아이’와 ‘나’ 사이에 놓인 수많은 선택들 사이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시험받는 기분이었다. 잠시 아이를 떼어놓고 외출하면 해방감과 동시에 죄책감이 몰려왔다. 빨리 복직하고 싶다가도 하루 종일 혼자 남겨질 아이가 못 견디게 측은했다. 그래서 스테퍼니는 어머니로서 ‘분열된 상태로’ 사는 법을 배운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러한 혼돈을 나 혼자만 느끼는 건 아니라는 것이고, 안타까운 점은 스테퍼니가 얘기했듯이 이러한 분열은 쉽게 봉합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 한겨레21 제1096호 <모성애 탐구생활> 중-

 

 칼럼의 필자는 봉합되기 힘들다고 했다. 아마 그가 아직은 신생아 단계의 아이를 돌보는 양육자이기 때문일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대체로 봉합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봉합수술이 그렇듯이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한 이전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당시의 내 마음을 내 상태를 가장 가깝게 묘사된(그래서 공감받은) 거의 유일한 글인 것 같다. 나는 이 글을 나 이후에 출산한 모든 모성후배들에게(어쩌면 내 딸이 출산을 경험하게 될 때까지도) 언제까지나 내밀고 있다. 더 멋진 조언이나 위로를 전할 재주가 내게는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