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읽고 쓴다는 것은(책&영화 리뷰)

꿈의 도시

책날개 2011. 5. 25. 14:05

 

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2010, 은행나무

 

 

 

특정 작가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신작이 나올 때마다 사보게 되는 작가가 있다. 한때는 하루키가 그랬고, 지금은 김연수, 김경욱, 히가시노 게이고 그리고 오쿠다 히데오가 그렇다. 오쿠다 히데오로 말하자면 처음 <공중그네>를 읽었을 때만큼의 짜릿함은 이제 덜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술술 읽히는 그의 글담이 좋고, 무엇보다도 이 작가는 야구를 사랑한다. ‘오쿠다 히데오라서’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였다. 아니다. 진짜 이유는 책의 뒤표지를 막 덮은 지금이 이른바 산후조리 기간이라는 것이다. 밖에 나갈 수도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시간의 속도는 외곽순환도로 중동나들목 구간인 이 창살 없는 감옥과 같은 시기에는 너무 심각한 이야기도 깊은 고민과 성찰을 요하는 이야기보다는, 가볍게 그러나 산다는 것의 진정성을 부각시켜주는 책이 딱 좋다.

“폭발하는 스토리, 스피디한 전개, 충격적인 라스트신”이라는 책 띠의 홍보문구만큼은 아니지만, 내러티브가 넘쳐난다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눈에 띄게 새로운 이야기를 갖고 있지는 않은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의 분량이 600쪽을 넘기면서도 지루하지 않으니 말이다. 각각의 사연과 이유를 가진 사람들. 각자가 맞닥뜨릴 수 있는 최고로 격한 순간에 모두가 한꺼번에 부딪혀 큰 폭발이 일어난다. 지구상의 11억 인구에게는 11억 개의 사연이 있다고 한다. 이 모든 이야기가 한꺼번에 부닥쳐 폭발한다면 우주가 만들어진 빅뱅보다 더 큰 폭발이 될 것이다. 마지막 예측불허의 상황의 향해 달려가는 감정의 몰입이 참 좋았다.

 

도모노리가 운전하는 차는 국도를 서쪽으로 향해 달렸다. 마주 오는 차는 드물고, 인도에도 통행인은 없었다. 풍경 속에 색깔이라고는 신호등 불빛뿐이었다. 평소에는 독한 빛으로 번쩍거리던 간판도 성에가 껴서 모조리 회색빛으로 보였다.

조금 전에 만난 전처 노리코를 생각했다. 친척이 하는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돈이 궁했을 리는 없다. 그동안 자신이 충분한 양육비를 지불했고 친정에서도 도와주는 걸로 알고 있다. 한마디로 애초부터 매춘녀의 소양을 가진 여자인 것이다. 나는 그런 여자와 결혼했었다-.

도모노리는 핸들을 팡팡 내리치며 혼자 소리 높여 웃었다. 자신 속에서 광기 비슷한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이성을 담아두던 그릇이 깨지고 감정의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하하하하.”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웃음처럼 전혀 제어할 수 없었다.

p.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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