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23)
올해도 어김없이 이상문학상이 발표되었다. 발표뉴스만 보고 동네서점에 몇 차례 헛걸음 후 예약 주문을 하고나서야 손에 넣었는데 벌써 초판 6쇄! 문학, 특히 한국소설이 인기가 없어졌다는 우려도 있지만 여전히 꾸준히 읽는 사람들도 있으니 아직은 너무 걱정말자 생각했다.이상문학상은 1977년부터 시행한 국내 대표 문학상인데 대형 출판사나 언론사가 작가들의 등용문이던 시대는 이제 많이 멀어졌지만 그래도 매년 연초 올해의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사보는 것이 나의 연간 루틴이다.올해의 대상은 최진영 작가의 「홈 스위트 홈」이다.
「홈 스위트 홈」_최진영
소설의 주인공은 말기암 환자인 여성이다. 몇 번의 재발 끝에 더 이상의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집을 갖기위해 낡은 폐가를 사서 원하는 대로 꾸며간다.말기암이라는 상황이 다분히 절망적이고 죽음을 앞둔 상황은 충분히 암울하지만 새로운 집을 사서 미래의 기억대로 꾸미는 과정을 느릿하게 보여주어서 소설이 슬프지는 않았다.
엄마는 결혼식이 정 번거롭고 무의미하다면 혼인신고라도 하라고. 그건 결혼식처럼 돈이 들지도 복잡하지도 않고 서류 한 장만 내면 끝이라고.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으나 바로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 진단을 받았다. 어진은 혼인신고를 미룬 것을 울면서 후회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후회하지도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것을 미루면서 병이 다 나으면 하자고 어진을 설득했다. 수술하고 치료만 잘 받으면 금방 나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어진과 엄마는 나보다 더욱 확신 했다. 엄마의 지인 중에는 암에 걸린 뒤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이 몇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결과에만 집중했다. 병을 극복했다는 경험담에만 귀를 기울였다. 당시 우리에게 완치를 제외한 모든 경우는 실패였다. 죽음은 비극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p. 23)
말기암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낫기만을 바란다. 그리고 목표를 완치에 두고 많은 것을 그 뒤로 미룬다. 처음 주인공도 동거인과 엄마의 말에 따라 치료에만 집중하려 한다. 하지만 병원로비에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혼란을 느낀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건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라고. 나의 생활 방식, 식습관, 성격을 하나하나 따져 보며 문제점을 찾으려고 했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즐겨 마시던 와인이 문제였나. 유산소운동을 했어야 했나. 남들처럼 영양제를 챙겨 먹었어야 했나. (중략) 내가 뭔가를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자책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몸을 고치려는 치료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이려는 계획이 아닐까 하는 망상에 사로잡힐 만큼 지친 상태로 병원 로비를 지나갈 때였다. 느닷없이 날아온 누군가의 말이 나를 후려쳤다. 아직 젊은 사람이 대체 어떻게 살았으면 그런 병에 걸리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중년 남녀 네 명이 테이크아웃 잔 에 담긴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이제 웬만한 암은 초기에 발견해 서 금방 고칠 수 있다던데. 백세시대란 말이 괜히 있나. 건강검진만 제때 받아도 아플 일이 없지. 요즘처럼 좋은 세상에 자기 관리만 제대로 했어도 그 지경까지 안 갔을 텐데. 딱하다는 듯 혀를 차면서 그들이 주고받던 말. 아픈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네가 아픈 건 모두 네 탓이라는 그 말들.(p. 25~26)
이 경험으로 주인공은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잘못 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자신에게는 집이 없다는 걸 생각한다.
그럼 또 치료하면 돼.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
이제 항암은 하지 않을 거야
그건 의사가 결정할 일이야. 새로운 약도 많이 나오고 있다잖아.
의사는 선택지를 주는 거야. 결정은 내 몫이고.
내성 생기면 다른 약 쓰면 되니까 포기하지 말자.
물론이야, 나는 포기하지 않아.
나는 선택하고 싶었다. 나의 미래를. 나의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닌 살아 있다는 감각에 충실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치료는 그런 것이었다. 내가 말한 적 있나? 나는 어진에게 살아 본 적은 없으나 기억하는 집에 대해, 기 억한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집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노트를 펼쳐 주택 평면도와 입체도를 그렸다.
이집도 그중 하나야.
그림은 단순했다. 기역 자 형태의 단층 주택. 본채는 기하의 객실처럼 침실, 거실, 주방이 나란히 이어진다.(중략)
비 오는 날 여기에 앉아 부추전을 만들어 먹었어. 텃밭을 가리키며 이어 말했다. 이 텃밭에서 부추를 가위로 잘라 와서.
어진이 물었다. 언제?
나는 대답했다. 미래의 어느 여름날. (p. 27~28)
심각한 병에 걸린, 죽음이 가까이 있는 환자라고 해도 선택할 수 있는 미래가 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닌 살아있다는 감각에 충실하고 싶다는 그 마음에 깊이 공감했다. 주인공은 이런 생각을 통해 자신만의 집,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 어느 공간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그 미래의 기억 속 집을 갖기위해 폐가를 사서 기억과 같은 공간으로 만들어 간다.
잠시 그림을 바라보다 말했다.
나는 이 집에서 죽어.
그 순간, 내 주변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미래와 희망을 느꼈다.
그럼 나는?
어진이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나와 같이 여기서 살지.
이 집은 어디에 있어?
완치하리라는 희망보다 훨씬 단단한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이제 우리가 찾아낼 거야. (p. 29)
폐가를 고쳐서 살겠다는 내 계획을 들었을 때도 엄마는 말도 안된다고 했다. 아픈 사람일수록 생활이 편리하고 큰 병원이 가까이 있는 도시에 살아야 한다고 병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어째서 시골의 다 쓰러져 가는 집에 기어들어 갈 생각을 하는 거냐고, 불길하다고, 제발 정신을 차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매매 가능한 폐가나 주택부지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병원 침대에서 죽고 싶지 않아. 집에서 죽고 싶어.
왜 죽을 생각부터 해. 병원에 가면 살 수 있는데.
살 수 있다는 생각만 하다가 죽고 싶진 않단 말이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거야.
네가 할 일은 건강을 되찾는거야. 아픈 사람이 어떻게든 나을 생각을 해야지
아픈 사람이란 말 좀 그만해, 엄마. 나는 나을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더 행복해질 수는 있어. (p. 33~34)
그렇다. 우리에게 아픈 사람이란 희망이 없는 사람, 미래가 없는 사람이다. 현재만 있고 그 현재는 낫기위한 노력으로만 가득 차야 한다.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나을 수는 없지만 더 행복해질 수는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집을 사서 꾸며가는 일로 행복해진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원하는 집은 과거에 살았던 좋은, 혹은 살고 싶어하는 그런 집이 아니다. 자신이 기억하는 미래에 살았던 집을 원했다. 그 기억의 시간은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은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선형적 시간이 아니다. 주인공은 그런 시간의 얽힘을 비록 아프지만 더 행복해질 수는 있는 사람으로써 이루려고 한다.
공사를 도우며 집 안 곳곳에서 여러 물건을 주웠다. 플라스틱 헤어핀, 문구사 앞 뽑기 기계에서 봅았을 듯한 통통 튀는 고무공, 닳은 지우개, 몽당연필.(중략) 그런 것을 발견하면 흙을 털어 내고 물로 깨끗이 씻어 작은 바구니에 모아 두었다. 누군가 그것을 찾으러 올지도 모르니까. 실례지만 혹시 이곳에서 손잡이에 꼭 모양 장식이 있는 티스푼을 보지 못했습니까. 하늘색 고무공을 찾지 못했습니까.(중략) 과거에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멀리까지 찾아와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상상하면 행복했다. 그들이 찾는 것을 기적처럼 꺼내어 건네주는 상상은 천국 같았다. 또한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듯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한 미소. 다정한 침묵...... 앞서 걷는 당신의 뒷모습. 실없이 웃는 당신.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내가 두고 갈 것. (중략)
엄마는 여전히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죽음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니까. 미래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나는 이제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눈앞에 내가 기억하는 미래가 나타났으므로. (p. 36~38)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이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미래라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고 조금은 덤덤하게 생각했다.
소설을 읽고 작가의 수상소감에 소개된 다큐멘터리<엔드 게임: 생이 끝나갈 때(2018)>를 찾아봤다. 죽음을 앞 둔 환자들, 그리고 가족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고 맞이하는지를 처음 생각했다. 미래의 죽음에 대해, 나의 죽음에 대해, 가까운 이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영화<컨택트(2016)>를 더 많이 떠올렸다. 시간이라는 것이 선형이 아니고 작가의 표현처럼 그저 동시에 발산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나의 오늘은 어때야 할까, 뭘 하고 싶을까 하는 물음이 더 커졌다.

대상은 최진영 작가에게 돌아갔지만 그렇다고 다른 작품들이 그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당연히도 절대 아니다. 다음에 다른 작품집에서 보게 되었을 때 아 어디서 읽었더라 하며 갸웃하지 않기 위해 짧게라도 소개해본다.

「세상의 모든 바다」_김기태
재일 교포인 주인공은 K팝 그룹 '세상의 모든 바다'의 잠실주경기장 공연을 보러갔다가 공연장 앞에서 일어난 참사에 휘말린다. 그룹 '세모바'는 환경, 인류, 소수자 등 사회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얘기하는 아이돌이다. 이 아이돌의 팬인 것만으로도 이미 환경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 난민과 성소수자, 이민자의 지지자가 될 수 있다.
여섯 개 대륙 열한 곳의 해변을 담은 뮤직비디오에는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의지, 그리고 그럴 수있다는 낙관이 넘실거렸다. 한국에서 흔히 '국뽕'이란 말을 사용하지만 그 노래를 들으면 '세계뽕' 혹은 '인류뽕'이 차올랐다.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한국 굴지의 엔터사에서 빠르게 임원이 된 그 프로듀서는 말했다. 선도적인 문화콘텐츠로서 케이팝은 이제 '공존'이라는 시대적 화두에 답해야 한다고. (p. 124)
세계뽕, 인류뽕. 멋있다. 그런데 인파가 운집한 그들의 공연장 앞에서 작은 테러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공연을 보러온 많은 팬들이 죽거나 다친다. 그 중에는 주인공이 만난 유일한 동료 팬인 소년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소년은 원전피해지역에서 공연을 보러 먼 길을 온 것이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동시에 10년 넘게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는 나로서는, 아이돌 팬덤, 사회적 약자, 자이니치, 원자력 발전, 이태원 참사 등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문제작'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아이돌과 팬덤이라는 면에서는 2022년 최고의 영화로 (나에게) 선정된 <성덕(2021)>도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나, 나, 마들렌」_박서련
제목처럼 나와 또 다른 나와 마들렌 세 명의 이야기다. 또 다른 나는 정말 나에게서 분열된 '나'이다. 모습도 같고 생각도 '클라우드'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나'는 셋이 게임을 하게 되면 마들렌이 불리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 분열된 자아의 참신함이 여기에 있다. 보통 분열된 자아, 도플갱어 같은 존재의 경우 주인공과 늘 아슬아슬하게 어긋나거나 물리적 대상이 아니거나 하면서 주인공과 삶이 겹치지 않는다. 그런데 소설의 또 다른 나는 내 옷을 나눠입고(그래서 맨날 옷이 없다), 똑 같이 먹어야 하고(식비도 두 배로 든다), 같이 사는 마들렌이 눈치 못채도록 이틀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집에 온다(다른 하루는 찜질방이나 피시방에서 덜덜 떨며 밤을 보내야 한다). 물론 일을 나눠서 하거나 약속이 겹칠 때는 따로 갈 수도 있지만 사는 게 하루하루 너무 피곤한 날이라서 피로가 반으로 바로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 자아의 분열은 마들렌이 겪은 성희롱 사건을 통해 왜 일어났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데 비록 사랑하는 사람이 겪은 일이라도 지지하는 마음과 지지하지 않는 마음이 동시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은 충분히 공감하게 했다.
언니 오늘 그렇게 입고 출근했던가?
집 근처 피시방에서 핫바를 사 먹던 내가 반차를 썼다고 것짓말을 하며 들어가자 마들렌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렀다. 어, 응. 나 출근할 때 자고 있던 거 아니었어? 그보다 할 말 있다며, 무슨일 dlT어? 내가 짐짓 걱정스레 묻자 마들렌은 말했다.
언니 , 다음 공판 기일에 증언해 줄 수 있어?
그야 나는 당연히..... 뭐라고?
쟁점은 위계에 의한 강제 추행인지 아닌지로 가져가야 한대. 나는 미성년자가 아니라서 불리하대. (중략)
미안한데 나 못할 것 같아.
언니.
나는 네가 그 사람 얘기할 때마다 둘로 쪼개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사람 실제로 보니까 더 그랬고.
거짓말이 아니었다. 마들렌을 보고 있는 동안에 나는 소설가보다 마들렌을 미워하는 나를 발견했고 마들렌의 감자 친구인 나는 그런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분명 소설가를 미워했지만 한편으로는 연민했다. 그런 인간을 연민하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그런 자리에 앉게 만든 마들렌이 소설가보다 더 미웠고 최종적으로는 나 자신을 가장 미워하게 되었다. (p. 163~164)
그리고 이제 마지막 남은 문제는 그 둘 중 하나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가 구효서는 심사평에서 '둘, 셋으로 번식하는 자기의 목을 자기 손으로 베기 위해 식칼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는 장면에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고 했는데, 뭐 비명까지는 아니어도 소설의 관점이 도발적이고 참신하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_ 서성란
주인공은 문학과 글쓰기를 좋아하고 수필집도 한 권 낸 아마추어 작가이다. 남편은 문학과 관련있는 전공의 대학교수고 딸은 조금은 성공한 희곡 작가이다. 그 딸이 '돌아오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입양아와 관련된 희곡을 쓰게 되면서 주인공 여성의 과거에 드리웠던 커튼이 조금씩 걷히며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솔직히 나는 이런 감수성 예민한, 혹은 문학성 가득한 캐릭터를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주말 부부인 남편과 독립한 아이가 각각 자기 공간으로 가버리고 혼자 남은 월요일 오전이 기다려지는 중년 여성의 마음만은 십분 이해하고 말았다.
「크로캅」_ 이장욱
소설은 펜타곤에서의 격투기의 무대로 시작한다. 엘보에 찍히고 니킥에 휘둘리는 늙은 파이터 '크로캅'. 그리고 그것에 빗대지는, 흔히 존재하는데도 존재감이 없는 노인들의 이야기로 읽었다. 많은 평론가들이 심사평에서 엘보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얼얼함이 있다고 표현했는데, '크로캅'과 '당신'과 '그' 사이에서 기술적 서술로 인해 주는 혼란이 사실은 소설의 꽤 큰 재미인 것 같다. 마치 추리소설의 서술트릭처럼.
마스크를 쓴 유령을 본 적이 있는가. 유령처럼 그자는 스르르 걸어 다닌다. 표정도 없이 걸어 다닌다. 계단으로 걸어 다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고 거리를 휘적휘적 돌아다닌다. 원한을 품은 자답게, 당신을 노리는 자답게, 당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자답게, 당신의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하이에나가 사체 주위를 배회하듯이. 독수리가 죽어가는 동물의 머리 위를 선회하듯이. (p. 201)
「그곳」_최은미
가장 현실이 반영된 소설이라고 해야할까? 소설 속의 태풍, 전염병, 벌레, 곰 등의 재난 상황은 분명 얼마전에 뉴스에서 본 내용이고, 주인공이 사랑하는 공간 '국민체육센터'도 나 역시 가까이에서 향유하는 공간이다. 주인공이 산책하는 야산, 자기 몸에 맞는 동작 몇가지로 구성된 체조 루틴도 나의 일상처럼 느껴졌다. 그러기에, 어쩐지 사회성이 떨어지고 어쩐지 트라우마틱해 보이는 그녀의 기행이 결국은 사람들과의 연대로 기화되고 액화되는 모습이 좋았다. 뉴스만 보고 있으면, 우리의 삶이 앞으로는 그냘 하루하루의 재난일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을 억누를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이웃에는 차갑고 이기적이고 남들의 안위에는 1도 관심없을 것 같은 냉혈한들만 살고 있는 것 같을 때, 사회적 재난이 오면 저 살겠다고 다들 흩어져 남들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은 사람들만 가득인 것 같을 때, 소설을 아주 잘 쓴 글로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나를 조금 위로하는 것 같아 좋았다. 네 옆에 누군가가 결국 너의 연대자가 될 거라는 말이 좋았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나는 세탁기능사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시험공부를 하러 가는 길엔 언덕길을 지나야 했는데 내가 지나는 시간이면 늘 오른쪽 길 위에서 택배차가 내려왔다. 내가 먼저 길을 지날 때는 택배차가 속도를 늦췄고 택배차가 먼저 지날 땐 내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그 사실에 갑자기 눈물이 날 때가 있었다. 트럭이 나를 보면 멈출 것이라는 걸 내가 알았다는 사실에. (p. 268~259)